산행기록
○ 일시 : 2014.9.9 10:00 ~ 16:00
○ 장소 : 강진 만덕산
○ 참석 : 1인
○ 높이 : 만덕산 408m / 누적고도 500m추정
○ 거리 : 12.0km / 도로 5km
○ 시간 : 6.0시간(휴식시간 0.3시간) / 이동시간 2시간
○ 배지 : 만덕산
○ 코스 : 석문공원 - 팔각정 - 286봉 - 293봉 - 236봉 - 통신탑(280봉) - 바람재 - 만덕산 - 백련사 - 다산초당 - (도로회귀)
○ 특이사항 : 암릉 조망산행
<만덕산>
만덕산은 강진읍 남쪽에 위치한 야트막한 산으로 마을 뒷산처럼 보잘 것 없지만 산안으로 파고 들면 암팡지고 아기자기한데다 그윽한 정취가 넘치는 산이다. 산기슭에는 천년 고찰 백련사와 다산선생의 실학정신이 깃들어 있는 다산초당 등 역사적 자취를 더듬어 볼 만한 곳이 있어 등산과 유적지 답사를 겸한 산행이 적격이다. 산세 또한 부드러워 가족산행으로도 권장할 만하다.
외지 탐방객들은 토굴암자를 거쳐 깃대봉(정상)에 올랐다 다시 백련사로 내려선 다음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코스로 산행을 끝내지만 등산인들은 만덕산 북단의 옥련사에서 시작하여 정상에 오른 다음 백련사를 거쳐 다산초당에 이르는 코스가 적당하며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정상에서 바람재를 거쳐 도암면 석문사에 이르는 코스가 1일 산행으로 적당할 것이다.
바람재에서 석문사에 이르는 등산 코스는 일반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활잡목 및 잡초가 등산로를 뒤덮고 있으나 이정표가 군데군데 있어 산행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옥련사-깃대봉-백련사-다산초당 코스는 그다지 험난한 구간이 없고 산행시간도 점심시간을 포함하여 4~5시간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에 노약자들도 산행이 가능하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에 이르는 오솔길 주변에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151호)이 하늘을 뒤덮고 초당을 내려서는 길에는 하늘높이 자란 삼나무와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어 누구든지 들어서면 사색에 젖을 수 있는 코스이다.(강진군)





석문산 암릉
석문
강진군의 도암면 석문리에 있는 바위이다. 북동쪽의 만덕산에서 남서쪽의 덕용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중간에 하천으로 인하여 단절된 구간이 있다. 이 하천 양안에 솟아 있는 암석지형은 험악하고 모양은 마치 돌문처럼 생겼다. 지명은 이러한 암석의 모습에서 유래하였다. 『해동지도』에서 처음으로 확인된다. '험악하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청구도』, 『1872년지방지도』, 『조선지형도』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관련 지명으로 석문산(石門山) · 석문천(石門川) · 석문리(石門里) · 석문암(石門庵) · 석문협곡(石門峽谷)이 있다. 이들 지명이 『구한국행정구역일람』이나 『조선지형도』에서 처음으로 기재되는 것으로 보아 석문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겨진다. 석문산은 그곳의 아름다운 기암괴석으로 인하여 강진의 소금강(小錦剛)으로도 불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석문 [石門, Seongmun] (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지명, 20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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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계곡(공원)










석문산, 덕령산, 주작산, 두륜산 능선














참취 로제타 충영

영지버섯







만덕산 칼날능선



굳이 명명하자면 사마귀바위(?) 정도














가야할 만덕산 능선


백련사
백련사는 신라 문성왕때 무염국사(801 ~ 888)가 산 이름을 따라 만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이후 쇠락했다가 고려 희종 7년 원묘국사 요세스님이 옛 터에 중창하고 백련결사로 크게 이름을 날려 백련사로 불리게 되었다.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으로 유배를 왔을 때 아암 혜장선사와 종교, 나이를 뛰어넘은 소통과 교류를 했던 공간으로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백련사와 다산초당이 있는 만덕산은 야생차가 많아 예부터 다산(茶山)이라 불렸으며, 정약용이 이곳에 유배와 지냈다는 의미로 '다산'이라는 호를 지어 대표적으로 사용하였다. 조선 후기 차 문화의 부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백련사의 또 다른 자랑은 무엇보다도 천연기념물 151호로 지정된 1,500그루의 동백나무숲이다. 11월 말부터 피기 시작하는 꽃들은 3월 말경에 만개하여, 4월에는 땅 위에 떨어져 다시 한번 붉게 숲을 물들인다. 백련사에서는 휴식형, 단체체험형, 다도체험등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절 주변으로 다산초당과 다산박물관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련사(강진)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다산초당


다산초당
다산초당, 동암, 서암, 천일각 등의 건물과 ‘다산4경' 이라 부르는 정석, 약천, 다조, 연지석가산 등의 유적이 있다.다산초당을 비롯하여 이곳의 다양한 유적을 ‘정약용 유적' 으로 통합하여 사적 107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다산초당 건물은 원래 목조 초가였으나 1936년에 노후로 인해 붕괴되어 없어졌던 것을 1957년 강진 다산유적보존회에서 그자리에 목조 와가로 중건하였고현판에 판각된 ‘다산초당’이란 글씨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을 집자해서 모각한 것이다.(강진군)

다산초당 현판 / 추사 글씨로 ‘다산초당(茶山草堂)’과 함께 ‘보정산방(寶丁山房)’도 썼다. 24세 연하인 추사는 평소 다산을 스승으로 존경했다.

유적비
다산 정약용 선생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병조참지. 형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처음에는 강진읍 동문밖 주막과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 집 등에서 8년을 보낸 후 1808년 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해배[解配]되던 1818년 9월까지 10여년 동안을 다산초당에서 생활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을 하였으며, 다산의 위대한 업적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강진군)


다시 주차장으로 회귀


